현대차가 7년 만에 새 준대형트럭 내 놓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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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형 트럭 이미 수입차판매가 턱 앞까지 추격...."중형도 밀리면 끝" 위기감
이인철 현대차 상용사업본부 부사장이 8월29일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 제2전시장에서 열린 "트럭 앤 버스 비즈니스 페어"
에서 신형 트럭 "파비스"를 공개하고 있다. <사진 연합뉴스>
월 29일 오전 10시 30분, 갑자기 내린 소나기에도 불구하고 경기도 고양시 킨텍스 제2전시장에는 많은 취재진이 몰렸다. 현대차는 신형 트럭과 전기·수소버스를 공개하는 행사 ‘트럭 앤 버스 비즈니스 페어(TBBF·Truck and bus business fare)’를 개최했다.
이인철 현대차 상용사업본부 부사장은 “상용차의 현재와 미래를 동시에 체험하는 행사로 기존 내연기관 차량과 친환경 차량을 한 공간에서 경험할 수 있다”고 했다. 주최 측 추산 약 250명이 참석한 이날 행사장에는 수십 대의 현대차 트럭과 수소·전기버스가 전시돼 있었다.
이 부사장은 준대형(5.5~13.5t급) 신형 트럭 ‘파비스(PAVISE)’를 최초 공개했다. 그는 “‘파비스’는 현대차의 중형트럭(최대 5t급) ‘마이티’ ’메가트럭’과 대형트럭(최대 25.5t급) ‘엑시언트’ 사이의 준대형 트럭으로 경제성과 실용성을 동시에 추구했다”며 “고객 필요에 따라 적재 범위를 조정할 수 있고, 사다리차와 쓰레기수거차 등 다양한 특장차로의 변환도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 행사는 현대차가 지난 2013년 ‘엑시언트’ 출시행사 후 7년 만에 연 트럭 신차 발표회 성격이었다.
현대차가 이날 신형 트럭을 선보인 건 현대차 상용차(버스+트럭) 실적이 좋지 못했던 탓이기도 하다. 현대차의 최근 5년간 상용차 판매실적을 보면 국내는 2017년 3만2321대(버스 8630대, 트럭 2만3515대)를 정점으로 지난해 2만9521대(버스 8630대, 트럭 2만621대)로 8.6% 감소했다. 해외는 2015년 3만5788대(버스 1만23대, 트럭 2만5765대)를 정점으로 지난해 3만1934대(버스 1만258대, 트럭 2만1676대)로 10.7% 줄었다. 올해 1~7월 중에는 국내에서 1만7332대(버스 5310대, 트럭 1만2022대), 해외에서 1만3208대(버스 5401대, 트럭 7807대)가 팔린 상황이다.
현대차의 위기의식 드러낸 행사
현대차가 준대형 트럭을 출시하며 대대적인 홍보 행사를 개최한 건 국내 상용차 시장에서의 위기의식을 드러냈다는 분석이다. 그간 현대차의 ‘텃밭’이라고 생각됐던 국내 승용차 시장에서도 수입차의 득세로 시장 수성을 걱정해야 하는데 대형트럭 시장에서는 주도권을 수입사에 이미 빼앗긴 상황이기 때문이다.
현대차(기아차 포함)의 국내 승용차 시장점유율은 지난해 말 현재 약 80%로 압도적이지만, 25.5t급 대형 트럭(덤프 기준) 점유율은 올해 상반기 말 현재 15.5%에 불과했다. 같은 시점 스웨덴 볼보의 점유율은 40.1%에 달했다.
이처럼 유럽의 볼보, 만, 벤츠, 스카니아 등 완성차 제조사들은 국내 대형 트럭 시장에서의 강력한 장악력을 바탕으로 이미 애프터서비스(AS)와 부품공급망 등 네트워크를 갖추고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려 하고 있다. 대형에서 준대형, 중형으로의 시장 확대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현대차가 7년 만에 트럭 신차 발표회를 연 것은 이런 위기감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수입 상용차의 시장 확대를 저지하지 않으면, 텃밭인 한국에서조차 상용차의 존립 기반이 무너질 수 있는 단계에 왔다는 것이다.
이 시장은 만만치 않다. 승용차에 비해 운행 시간이 훨씬 긴 상용차는 기술력을 바탕으로 한 높은 연비와 내구성이 매우 중요하다. 운행 시간이 길수록 많은 돈을 버는 상용차는 특히 연료를 덜 소모하는 것이 고수익으로 직결된다. 그러나 100년이 훨씬 넘는 해외 완성차 제조사의 높은 연비 등 축적된 기술력을 현대차가 단숨에 따라잡기는 쉽지 않다. 독일 만의 경우 트럭 제작 이전의 중공업까지 합치면 250년 역사를 자랑한다. 업계 관계자는 “트럭 차주들은 차 앞에 수입차 마크가 붙은 것을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며 “국산 트럭의 가격이 수입산에 비해 30% 정도 싸다고 해도 높은 연비와 일종의 브랜드 자부심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그리고 현대차 입장에서는 아직은 채산성도 낮다. 핵심 부품 중 수입산이 많기 때문이다. 경쟁 업체 대비 규모의 경제에서도 밀리기 때문에, 승용차처럼 제조원가를 압도적으로 내려 가격경쟁력으로 승부 내기도 어렵다. 또 강성 노조 등으로 생산 효율이 떨어지는 문제도 거론된다. 넘어야 할 산이 많은 셈이다.
수소트럭으로 위기 돌파 모색
그러나 현대차가 이 시장을 포기할 수는 없다. 상용차는 승용차에 비해 신차 발매 주기가 길다. 승용차는 5년 정도 주기로 신차가 나온다면 상용차는 10~20년간 같은 모델이 이어지는 특성이 있다. 승용차는 경기를 타지만, 상용차는 꾸준한 수요가 있다. 자동차 제조사 입장에서 상용차는 안정적인 ‘
캐시카우(수익창출원)’인 셈이다. 상용차에도 강점이 있는 독일 벤츠가 그렇지 않은 BMW보다 안정적인 수익구조를 가졌다고 평가받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현대차는 이런 상황을 수소트럭으로 극복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내고 있다. 이 부사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중국 베이징과 상하이에서 수소트럭 생산을 검토하고 있다”며 “확정될 경우 빠르면 2023년부터 생산이 가능할 것”이라고 밝혔다. 현대차는 올해 12월 스위스에 수소트럭 10대를 공급하는 것을 시작으로 2025년까지 스위스에서 1600대의 수소트럭을 판매할 계획도 가지고 있다.
한국 정부와 현대차가 주력하고 있는 수소차는 승용차보다 트럭 등 상용차에서 실현 가능성이 더 크다는 평가가 대세다. 트럭은 고속도로 등 정해진 루트를 오가기 때문에 수소저장소를 도심에 꼭 설치할 필요가 없다. 승용차의 경우 인구가 밀집한 도심에 저장소를 세워야 하지만, 사회 저항이 크기 때문에 진척이 쉽지 않다. 자율주행기술을 도입하기 쉬운 것도 트럭이다. 도심에 비해 덜 복잡한 고속도로를 반복적으로 이동하기 때문이다. 다만 수소차의 경제성을 얼마나 빠른 시간 내에 갖출 수 있는지가 향후 성공 여부를 가를 중요한 요인이 될 전망이다. 펠릭스 퀴베르트 만 대체수송 부문 부사장은 지난 3월 한 국내 포럼에서 수소 상용차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드러낸 바 있다. 그는 “전기차의 효율성은 디젤차의 71%에 달하는 데 비해 수소차는 20%에 불과하다”며 “수소 상용차는 경제성 면에서 아직은 시장 경쟁력이 없다”고 말했다.
이 부사장이 이날 2023년 생산을 언급한 것도 경제성을 확보할 기술 개발에 아직은 시간이 필요하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조수홍 NH투자증권 연구원은 “수소탱크 적재에 따른 공간 제약 등에 따라 앞으로 승용차 시장에서는 전기차가, 상용차 시장에서는 수소차가 각자의 경쟁력을 보이며 공존할 것”이라고 예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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